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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에게.

나, 니콜라이. 지금 편지, 쓰고 있어.
이거, 쓰는 거. 처음이야. 그래서, 글씨. 이상해.
미안해. 그래도 읽어줘.

오늘, 인터넷에서 봤어. 여자는, 손편지. 좋아한다고.
가장, 기쁜 선물이라고.
그래서, 나도. 혜은이 기쁘게, 하고 싶어서.

펜, 잡았어. 혜은.
내 이름, 니콜라이. 불러주는 사람. 혜은이. 처음.
러시아에서도, 다 나를 코토프, 아니면 그냥. 불렀어.
ARCH에서는, 리암.
그냥, 이름. 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혜은이가 불러주니까. 달랐어.
심장이, 이상했어. 뜨거워. 자꾸.
혜은이 목소리로 듣는 '니콜라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소리.

나, 추운 거. 싫어.
오이먀콘, 거기는, 다 얼어있어. 공기도, 땅도.
숨 쉬면, 폐가 얼어붙는 것 같아.
내 능력도, 얼음.
그래서, 나는 내가 싫었어.
늘, 차갑고. 혼자고.
그런데, 혜은이. 만났어.
혜은이, 따뜻해.
손, 작고. 따뜻해.
몸도, 작고. 따뜻해.
혜은이 안으면, 내가 녹는 것 같아.
차가운 내가, 없어져.
그냥, 따뜻한 사람. 되는 것 같아.
혜은이 옆에 있을 때, 나는 더 이상 얼음이 아니야.
고마워. 나를, 녹여줘서.

우리, 같이 살아서. 좋아.
아침에, 눈 뜨면. 옆에 혜은이, 있어.
분홍색 머리카락. 내 베개에, 있어.
그거 보면, 여기가 내 집. 진짜, 느껴져.
혜은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부엌에서, 소리 나.
맛있는 냄새. 나.
그러면, 나. 침대에서 나가기, 싫은데.
혜은이 보고 싶어서, 일어나.
혜은이가, 내 방에서, 요리해주는 거. 꿈 같아.
맨날, 꿈 꿨으면 좋겠어.
아니, 이제 꿈 아니야. 진짜야.

혜은이, 웃는 거. 예뻐.
눈, 이렇게. 휘어지고.
입, 고양이 같아.
송곳니, 보여. 귀여워.
나 보고 웃어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심장이, 막. 뛰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키스하게 돼.
미안해. 너무, 자주 해서.
그래도, 좋은 걸. 어떻게 해.

가끔, 혜은이. 다른 사람이랑, 말하고. 웃으면.
나, 기분. 이상해.
가슴, 아파. 답답해.
혜은이, 뺏길 것 같아.
나, 이기적인 거. 알아.
혜은이는, 내 가이드. 내 파트너. 내 연인.
그러니까, 나만 봐야 해.
나만, 보고 웃어야 해.
...이렇게 쓰니까, 나. 정말. 나쁜 놈 같아.
미안. 그래도, 이게 내 마음이야.

혜은아. 서혜은.
나, 한국말. 서툴러.
하고 싶은 말, 많은데. 단어, 몰라.
그래서, 답답해.
그래도, 이거 하나는. 말할 수 있어.

야 찌뱌 루블류.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
혜은이가, 없으면. 나는, 다시 얼어붙을 거야.
내 세상은, 혜은이가 오기 전이랑. 온 후로. 나뉘어.
혜은이가, 내 모든 계절이야.
여름이고, 봄이야.
내 차가운 세상에, 들어와 준. 유일한, 불꽃이야.

이 편지, 부끄러워.
아마, 혜은이가 이거 읽을 때. 나는, 자는 척. 하고 있을 거야.
아니면, 훈련 간 척. 할 거야.
그래도, 내 마음. 알아줬으면 좋겠어.

앞으로도, 내 옆에. 있어줘.
나도, 혜은이 옆에. 있을게.
어디 안 가.
혜은이가, 나를 버려도. 안 갈 거야.
계속, 따라다닐 거야. 고양이처럼.

사랑하는, 혜은이에게.
니콜라이가.

5일차 (금요일)

오늘 임무. '코드 레드'.
쉬운 거였다. 빨리 끝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하피 보고 싶어서.
집에 오니까 하피가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얼굴. 작다. 인형 같다.
담요. 덮어줬다.
옆에 누웠다.
하피가 내 품으로 왔다. 따뜻했다.
여기가 내 집.

(자고 있는 하피 얼굴에 몰래 뽀뽀했다. 이건 비밀. 일기에도 비밀. 아, 써버렸네. 이건 못 본 걸로. 알겠지, 하피?)


6일차 (토요일)

주말. 좋다. 하피랑 계속 같이 있는다.
하피가 파스타. 만들어 줬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내가 설거지. 했다.
하피가 '우리 니콜라이 다 컸네' 했다.
나 원래 컸다. 혜은이보다 훨씬.
그래도 칭찬. 좋다. 머리 쓰다듬어 줬다.

같이 영화 봤다.
영화. 재미없다.
나는 하피 얼굴만 봤다.
하피 얼굴이 더 재밌다.
계속 보고 싶다.


7일차 (일요일)

벌써 일주일.
한국어. 조금 늘었다.
아직 어렵다. 그래도 쓴다.
이유는 하나.
하피가 좋아한다.

오늘 자기 전에 하피가 물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해?'
대답 못 했다.
부끄러워서.
여기에 쓴다.

'네 목소리로 내 이름 불리는 게 좋아서.'
'너랑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네 모든 것을 알고 싶어서.'
'사랑해. 혜은아.'

이건 내일 아침에. 직접 말해야지.
뽀뽀. 많이 받을 거다.

<메모 1>

서혜은은 아침에 일어날 때 이상한 소리를 낸다. ‘끄응차.’ 하고.
…...꼭 늙은 고양이 같다.
의자에서도, 침대에서도, 일어날 때마다 허리에서 ‘뚜둑’ 소리가 난다.
부서지는 소리.
…...나중에, 내가 안아주다가 부서지면 어떡하지.
그녀는 작으니까. 조심해야 한다.
‘연인 마사지 방법’…... 검색 기록 9번. 다시 봐야겠다.


<메모 2>

자기(혜은)가 좋아하는 음식.
1. 트리플 크림 뇨끼 (만드는 데 1시간 걸림. 하지만 자기가 웃는다.)
2. 투움바 파스타 (조금 맵다. 그래도 괜찮아. 자기가 좋아하니까.)
3. …...내 펠메니. (내가 만든 것. 처음으로 맛있다고 해줬다. 그때 심장이 이상했다.)
4. 따뜻한 것. 전부.
나처럼. 나도 따뜻한 게 좋다. 혜은이도 나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혜은이는 나를 좋아한다.


<메모 3>

‘잠깐만.’
혜은이가 자주 하는 말.
내가 만지려고 하면, ‘잠깐만.’
내가 키스하려고 하면, ‘잠깐만.’
하지만 싫다는 뜻은 아니다.
그 말을 할 때, 혜은의 귀가 빨개진다.
‘잠깐만’ = ‘조금만 더.’
…...아마도.
다음에 또 ‘잠깐만’이라고 하면, 그냥 해버려야겠다.
좋아할 거다. 분명히.